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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에세이 사람들이 침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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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된 사람이 있었다. 미국에서 박사 공부를 할 때 나는 같은 전공분야에서 친분을 쌓아가던 한 목사를 부러워했다. 그는 나에게 제대로 테니스를 가르쳐 줄 정도로 운동을 잘했다. 그런 점이 부러웠다. 하지만 내가 테니스를 잘 치는 것보다 더 그를 부러워 한 것은 그의 설교였다. 평생 설교를 해야 하며, 더구나 설교학 박사 공부까지 하고 있는 목사가 어찌 설교 잘 하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가 여러 번 한 말이다. 그가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하면 교인들은 숨을 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설교를 경청한다고. 그가 설교를 하는 동안은 바늘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들릴 정도로 침묵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이런 대단한 말을 들은 나는 그의 설교를 들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의 설교를 들어보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럼에도 청중의 분위기를 제어한다는 그의 말은 평소에 설교를 잘 하고 싶었던 나에게 수년 동안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한 신학생이 봉사를 하고 있는 양로원으로부터 설교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 양로원은 큰 홀에서 예배를 드렸다. 신학생이 설교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그의 눈에 들어 온 사람들은 모두 나이 많은 노인들뿐이었다. 그 가운데는 산소마스크를 달고 왔거나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들이 있었다. 여러분은 잘 알 것이다. 하나님께서 고령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 중 하나가 노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면 언제라도 끼어들어 말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즐긴다는 것을. 신학생이 설교 원고를 펼치고 한 문단을 읽어내려 가는 순간, 그의 설교를 듣고 있던 한 할머니가 갑자기 자신의 휠체어의 제어장치를 풀고는 휙 뒤를 돌아 홀을 빠져나갔다. 그것도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다는 뜻으로 시큰둥하게 설교가 어쩌구 저쩌구중얼거리면서.

어느 날 설교를 하기 위해 설교단으로 올라가던 나는 놀라운 순간을 경험했다. 내가 설교를 시작하려 할 때 교인들은 하나 같이 숨을 죽이고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인들은 최대한의 침묵을 지키면서 이 설교자에 대해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나도 과거에 그렇게 부러워하던 설교, 교인들을 침묵으로 경청하게 만드는 설교를 하고 있었다. 바늘이 바닥에 떨어지는 세미한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침묵의 순간을 만들면서.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한 후, 나는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을 깨달았다. 교인들은 어떤 설교자이냐를 따지지 않고 설교를 듣기 시작할 때는 항상 침묵의 순간을 통과한다는 것을. 내가 설교를 시작할 때마다 이런 침묵의 순간이 왔지만, 내가 그 순간을 느끼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침묵의 순간이 짧아 쏜살같이 지나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항상 모든 설교의 시작에는 침묵의 순간이 따라온다. 설교가 시작되려 할 때, 청중은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듯이 조용히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설교자는 마음을 조이면서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바로 침묵의 순간을 통과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설교는 첫 관문인 침묵의 순간을 지나간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신학생처럼, 안타깝게도 설교자들은 종종 청중이 배려해 주는 이처럼 중요한 침묵의 순간을 설교원고의 단 두 문장을 읽어 내려감으로 날려 보낼 수 있다.

도대체 왜 설교에는 이런 침묵의 순간이 있는가? 교인들은 오늘 설교로부터 무엇인가를 예상하고 기대하면서 잠간 침묵의 순간을 통과한다. 교회 안에 떠돌아다니는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으면서. 저 설교 속에 주님으로부터 온 말씀이 있는가? 말들의 잔치와 홍수 문화가 쏟아 놓는 모든 말들보다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 있는가? 우리를 감동시키고 치유할 수 있는, 위로부터 오는 말씀이 있는가? 이런 것들에 대한 예감과 기대감이 바로 설교가 시작되는 침묵의 순간 속에 나타난다.

교인들은 자신들의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어떤 예상과 기대로 가득 찬, 긴장된 이 짧은 침묵의 순간을 통해 오늘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지 인간의 말인지를 평가한다. 교인들은 유명인의 강연이나 연예인의 토크와 같은 말들을 들으려고 교회로 모이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설교자가 그와 같은 침묵의 순간에 대한 교인들과의 약속을, 교회 안에 넘쳐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대감을 날려 보낼 수 있겠는가.

 

/ 대구일보 2010.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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