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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에세이 아니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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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가까이에서 존경하며 함께 일하던 선배 교수에 관한 정년 소식을 듣고 적지 아니 놀랐다. 그분의 동료 교수들과 제자들로 구성된 정년기념문집 간행위원회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내가 놀라 내 뱉은 단어가 바로 아니 벌써?”였다. 김 교수가 평소 몸으로 보여주던 건강, 얼굴로 보여주던 열정, 그리고 무게감 있는 굵직한 언어로 보여주던 카리스마가 아직도 다함이 없는데 벌써 뒤로 물러설 때를 맞이했다니.... 학교에서 마련한 교수 정년 퇴임식장에 참석할 때마다 학교 제도의 아쉬움을 느꼈지만, 김 교수의 정년 퇴임식에는 더욱 감당하기 힘든 아쉬움을 느낄 것 같다. 도대체 우리가 만든 뒤로 물러나는 것즉 퇴직이란 무엇인가?

내가 교목실장으로 김 교수와 가까이에서 함께 학교를 위해 일한 일들은 세 가지였다. 첫째로, 나는 그 동안 김 교수의 아들 결혼식을 주례하면서 그분의 가족 사랑을 알게 되었다. 둘째로, 나는 대학원장이던 김 교수가 주관하던 명예박사학위식들과 대학원학위식의 순서를 맡아 적절한 의식 진행을 위해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여유를 경험했다. 셋째로, 나는 매년 대구와 경북의 중고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참스승을 뽑는 꽤 까다로운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장으로 김 교수가 짧은 시간 내에 명쾌하게 결론을 이끌어내던 또 다른 카리스마를 지켜보았다. 이런 멋진 선배 교수에게서 후배 교수가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가다니.... 무슨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김 교수의 퇴임을 앞으로 10년 후에 내가 맞이할 퇴임과 비교해본다.

변화란 모든 인간에게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건강과 열정과 카리스마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누구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평범한 일들에 익숙해져 있고 편안하다. 또한 알지 못하는 것들에는 두려움을 느낀다. 옛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악마를 더욱 잘 피해간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과 상관을 또는 자신들이 선택한 직업을 싫어하면서도 나쁜 관계들을 견딜 것이다. 또는 많은 경우 심사숙고하여 그리고 방법론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보다는, 그리고 처음부터 도전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훨씬 더 풍성하고 더 만족스런 삶을 창조하기보다는 현재의 일들에 빠져버릴 것이다.

아하! 뒤로 물러나는 퇴직이 바로 시작되는 곳이 여기이다. “내 남은 생애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실천하는 기로에 서는 것이다. “나는 퇴직하는 것을 이해한다...그러나 이전보다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데 왜 뒤로 물러나야 하는가?”

참 좋은 질문이다. 아무리 정년을 맞이한다 해도, 비전으로 시작한다면 그 비전을 성취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분명한 비전도 없는 것은 후회하게 되고 종종 길을 잃게 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를 때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뒤로 물러나는 퇴직은 미리 하나의 목적지를 향하도록 결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다음, 그곳에 도달하는 방법을 자신에게 보여줄 지도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목적지는 바로 평소에 우리가 되고 싶어 하던 존재일 것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정년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개인적인 인생지도를 만들기 시작하는 출발선이다.

이런 말이 단순한 위로로 들리는가? 그렇게 들린다면, 그 말은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타인에 의해 고용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행해야 할 것들을 실천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래서 정년은 평소보다 더 빨리 일 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며 오히려 자신의 인생의 꿈을 쫒아가도록 만든다.

구약성경 전도서 기자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외쳤다. 생물학적으로는 65세까지 지낼 수 있게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이 삶의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정년퇴임은 평생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하나의 보상이 될 수 있다. 새로운 경험을 즐기면서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까지 인생에서 행한 일들을 점검해보는 시간이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까지 김 교수를 우리 곁에 있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주인공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교육자들의 꿈의 지평을 더 넓히시기 위해 그를 우리보다 앞서 새로운 세계로 보내심 또한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떠나가는 선배 교수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그의 미래에 간섭하시고, 그의 영혼과 육체를 축복하옵소서. 그는 당신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 대구일보 2009.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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