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에세이 양심보고서가 사라진 사회
- KA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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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육군보병학교에서 군종장교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기 시작한 지 한 달되었을 때였다. 절대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써서 외부로 보내면 안 된다는 통신보안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후, 나는 친구 목사들과 함께 첫 외출을 즐기기 위해 광주 시내로 향했다. 떼를 지어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한 친구 목사가 조그만 가게로 들어가 우편엽서를 샀다. 통신보안 교육을 받았음에도, 그 친구의 용기와 설득에 반해 나를 포함한 친구 4명 모두 덩달아 우편엽서를 샀다. 그리고 곧 우리는 숨어서 얼른 그 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가족들에게 간단하게 몇 자 적어 우체통에 넣었다.
그 날 저녁 점호가 끝난 후, 누군가 내무반에서 피곤하게 잠을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한밤중인데도 당장 행정실로 오라는 구대장의 명령을 전달받았다. 잠이 덜 깬 상태로 가보니, 이미 먼저 와 있던 동료 목사 세 명은 죄인처럼 얼굴을 숙인 채 얼 차례 자세로 서 있었다. 구대장은 나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그는 남다른 봉사를 하면서 신뢰를 받았던 나까지 중요한 통신보안을 어겼다고 분을 이기지 못하더니 자신의 군화로 책상을 막 걷어찼다. 놀랍게도 그는 내가 전날 낮에 광주 시내에서 우편엽서를 사서 가족에게 편지를 써 보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내 친구 목사들 모두 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실까지 다 알고 있었다.
야밤에 한참 벌을 받고 벌점까지 받은 후, 앞으로 통신보안을 철저하게 지키겠다고 약속을 하고 내무반으로 돌아오다가 내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우리가 한 일을 어떻게 구대장이 다 알고 있느냐고. 친구 하나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친구가 스스로 먼저 찾아가 모든 사실을 토로한 것이었다. 그의 고백에 의하면, 그 날 밤잠을 자는데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낮에 우편엽서를 사서 가족들에게 보낸 그는 훈련을 받고 있는 군인으로 절대 해서는 안 될 통신보안 어긴 것 때문에 심한 마음의 고통을 느꼈다. 그는 잠을 자지 못하고 계속 고민하다가 밤 12시가 넘었을 때 조용히 일어나 행정실로 찾아갔다. 잠을 자고 있는 행정병을 깨우고 구대장까지 불러오게 해서 소위 ‘양심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통신보안을 어겼다고 양심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한 그는 참 목사다운 정직한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의 양심보고를 들은 구대장은 “자네 혼자만 한 것은 아니지?”라고 물었다. 이 친구, 얼마나 정직한지! 친구 세 명이 함께 일을 저질렀다고 지나칠 정도로 양심보고를 해버렸다. 그러면 그렇지. 혼자 했을 리가 없을 것이라고 넘겨짓기를 한 구대장은 마음속으로 즐거운 노래를 불렀다. “지금 당장, 공범자들 3명을 모두 깨워 데리고 와!”
이 이야기가 우스운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 그 친구의 순진한 양심보고가 유쾌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지나치게 순진한 그 친구의 어리석음에 대해 냉소적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 사소한 규정 하나라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일을 저질렀건만 양심적으로 보고하고 스스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처벌을 받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점이 바로 우리를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할 중요한 가치가 정직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고백하는 정직한 사람의 양심보고, 정직한 인정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점점 경쟁이 심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는 정직을 아주 좋은 것으로 칭찬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나라의 초 중 고등학교 교실에 가장 많이 적혀 있는 단어가 정직이란 단어일 것이다. 정직은 급훈, 가훈, 교훈 등에 결코 빠지지 않는다. 또한 가정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행동하고 말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아이들이 정직하기보다는 현명하기를, 타인을 의심할 줄 알고, 자신을 먼저 보호할 줄 알기를 바란다. 우리는 너무 정직해서 남에게 잘 이용당하는 사람을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면서, 우리의 아이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직을 좋게 표현하거나 상식이나 편리, 또는 실리와 현실을 희생하면서까지 정직해지기를 주저한다. 인간관계를 다루는 전문가조차 우리에게 너무 정직한 것은 관계를 깰 수 있다고 말한다. 정직은 이제 실제적인 악덕은 아닐지라도 의심스러운 덕목같이 보인다. 정직은 인격적인 성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전략으로 연구되고 실험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철저하게 정직해지는 것이 아무리 부담이 간다 해도, 그 속성은 우리의 도덕적 양식과 사회생활에서 중심적인 것이다. 반면, 부정직함은 도덕적 생활을 파괴하고 우리의 사회질서의 기초를 파괴한다. 아무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지도자나 종교적인 열정이 뛰어난 신앙인이라도, 주위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라도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의 기초는 붕괴되고 만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그 좋은 대한민국 군대의 양심보고서 제도를 없앴는가?
/ 대구일보 2009.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