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에세이 자선냄비에 큰돈을 넣는 이유

 겨울이 오는 소리가 있다면 아마 12월이 되면 거리마다 들려오는 자선냄비 종소리일 것이다. 이 종소리는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기억나게 만드는 도움의 호소로 들리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당신도 한 번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보시죠?”라는 초청의 호소로도 들린다. 어쩌면 자선냄비 종소리는 우리들에 대한 사마리아인 테스트라고 볼 수 있다. 이 종소리는 올 해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멈추게 할 것이다. 하지만 얼마든지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단순하게 선한 일을 행해야 하는지를 우리의 생각으로만 아는 것은 그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정말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려 한다면, 그땐 생각의 변화 이상을 의미해야 한다.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더욱 크게 울리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선냄비에 큰돈을 넣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것은 무엇일까?

미국 프린스톤 대학교의 종교사회학 교수 로버트 워스나우(Robert Wuthnow)는 한 때 왜 어떤 사람들은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관대하고 동정심이 많은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한 연구를 했다. 워스나우가 발견한 것은 동정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누군가가 그들에게 동정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험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워스나우는 구조원 잭 케이시(Jack Casey)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잭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만한 조건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매우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한 때 이렇게 고백했다. “내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내 아버지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잭이 어렸을 때 그의 삶을 변화시킨, 그의 마음을 변화시킨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하루는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게 된 잭은 수술실에서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때 수술실 간호사가 옆에 서서 그에게 온화하게 용기를 돋우고 있었다. 간호사는 “잭,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네 옆에 꼭 지키고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잭이 다시 깨어났을 때, 간호사는 자신이 말한 대로 정말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사건은 잭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되었다.

수년이 지난 후, 잭은 진료보조사가 되어 고속도로 자동차사고가 일어난 장소로 보내졌다. 한 남자가 트럭 아래에 깔려있었다. 잭이 그 사고 운전자를 끌어내려하자, 자동차 휘발유가 그 두 사람 위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구조원들이 연장을 사용하여 철판을 자르려 했다. 불꽃 하나가 튀어도 모든 것을 화염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겁을 먹은 사고 운전자는 죽을지도 몰라 비명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멍해지는 순간, 잭은 오래 전 수술실에서 일어난 자신의 사건을 기억했다. 간호사가 어떻게 자신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자신과 함께 끝까지 있어줬는지를. 잭은 그 트럭 사고 운전사에게 과거 간호사가 자신에게 한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이 행동했다. “이보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 바로 곁에 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잭은 나중에 이 사건을 기억하면서 말했다. “내가 그런 말을 하고 그렇게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과거의 그 간호사가 나에게 그와 똑같은 말을 하고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고. 며칠 뒤에 구조된 트럭 운전자가 잭에게 말했다. “당신, 알고 있어요? 당신은 정말 바보라는 것을. 폭발할 수도 있었는데. 당신과 나 우리 모두 불에 타버렸을지도 몰랐는데 말에요!” 그 때 잭이 말했다. “저는 당신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잭에게 이런 말과 행동을 일으킨 것은 과거에 그에게 베푼 한 선한 사마리아인에 의한 것이었다. 그 때의 경험이 그를 변화시켰고, 그를 또 다른 하나의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만들었다. 자선냄비에 큰돈을 넣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은 다 그러는 이유가 있다. 그들 모두 이미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입었기 때문이다. 올 해도 자선냄비 종소리가 과거에 우리에게 다가와서 베풀었던 한 명의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를 기도한다.

/ 대구일보 2008. 12. 5일자 - 허도화 (계명대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