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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에세이 아니요 라고 말하는 훈련

  • KALAHKA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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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시험 준비를 하던 두 학생이 다투고 있었다. 한 학생은 창문을 열어 놓기를 원하고, 다른 학생은 창문 닫기를 원했다. 그 학생들은 창문을 얼마만큼 열어 둘 것 인지를 두고 서로 다투기 시작하였다. “창문을 좀 엽시다.” “안돼요. 저는 닫아야겠어요.” “아니, 좀 열자니까요!” “안 된다니까요!” 이런 경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혹시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는가? 반나절 동안 한 번은 창문을 열어놓다가, 그 다음 반나절동안에는 닫아놓는 방법을. 아니면, 창문을 반쯤 열어 놓는 절충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이런 제안들은 적절한 해결 방법이 아니다. 그 대신, 상대방으로부터 긍정적인 협상을 이끌어내야 한다. “당신이 창문을 열려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실내 환기를 좀 시키고 싶어서요.” “, 그래서요? 그렇다면, 나도 좋지요!”

이런 이야기는 점점 사회가 복잡해지고 갈등영역이 확산되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상대방으로부터 YES를 이끌어 내는 협상임을 말해 준다. 협상이란 게임에서 한쪽은 이기고 다른 쪽은 지는(win-lose) 상황으로부터 쌍방이 모두 상생(win-win)하는 상황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의견들을 조정해서 수용할 수 있는 갈등해결방법으로 모든 참가자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어떤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더 쉽게 Yes에 도달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부터 협상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가치로 그리고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성공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 우리는 가능한 자주 상대방으로부터 Yes라는 하나의 단어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Yes는 위대한 단어이다. 단 한 음절을 말함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단어이다. “, 나는 그 일을 원합니다.” “, 나는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 “, 나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최소한 간단하게 라고 말하는 사람의 즐거움이란, 누군가가 나를 원한다는 것을 내 자신이 알고 또한 상대방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것을, 그녀가 내가 잘 하는 어떤 것을 하기 원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나와 함께 그것을 하기 원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내가 하나의 새로운 인간관계에로 들어가는지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미래를 창조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협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Yes라는 간단한 단어가 지닌 깊은 중독성을 쉽게 잊어버리고 심지어 탐닉하기까지 한다. 특별히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더 많은 Yes를 요구받고 또한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 간단하게 Yes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가능한 빠른 속도로 많은 것들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적응력 있다는 평가이며 성공의 표시이다. “Yes Man”이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교만을 숨기고 있는 증거이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공들을 공중에 던지며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며 감탄한다. 그러나 그들이 공 하나를 떨어뜨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의 눈을 피한다. ? 그렇게 되고 싶고, 하고 싶은 우리의 내면에서 그들의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최신 기술 문화도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많은 Yes를 말할 기회들을 열어준다. 20, 30년 전에는 결코 만나볼 수 없었던 중고등학교 친구들로부터 메시지들이 메일 박스 안에 날아든다. 그 친구들은 인터넷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과거의 만남으로 돌아가자고 만나자고 모이자고 Yes 클릭하기를 열망한다. 정치적인 그룹들은 탄원서를 돌리고 서명운동을 하면서 우리에게 Yes 서명을 요구한다. 사업을 하는 친구들은 자신의 회사 관련 블로그들을 한 번 읽어보라고, 그리고 다른 이웃에게 소개하며 연결시켜 달라고 Yes를 요구한다. 아무리 사고 싶은 좋은 책이라도 먼저 그 책의 표지나 목차 등을 인터넷 화면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결코 구입 싸인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인터넷이나 휴대폰 등을 통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Yes를 남발하는가!

이런 이유들로 그리고 더 많은 이유들 때문에, 과거보다 오늘날 No 라고 말하는 훈련이 더 필요하고 강해져야 한다. 너무 많은 요구들, 유혹들, 음식들, 오락들, 물건들에 대해 아니요 라고 말해야 한다. 이제는 무엇인가를 제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정직하고 건강한 가정과 사회를 원한다면 먼저 아니요 라고 말하는 훈련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아니요 라고 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우리의 내면 깊게 심겨진 들이 자랄 공간을 제거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소비문화가 부추기는 것들에 대해, 조용히 다가와서 소위 죄라는 주식(Sin stocks)에 투자하라고 유혹하는 소리들에 대해 자주 아니요! 라고 강하게 저항하라.

 

/ 대구일보 2008. 10. 24. 허도화(계명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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