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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에세이 무모한 선제공격을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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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한 탓인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자살 소식을 자주 접한다. 그 중에는 대중의 사랑과 신뢰를 받던 연예인들이 상당 수 있어 마음이 더욱 아프다. 연예인들의 연속적인 자살 현상은 그들이 느끼는 압박감과 부담감이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그것을 훨씬 초월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는 것도 힘들지만 그 인기를 유지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연예인들은 늘 우울증에 시달리고, 예사로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이런 자살 충동은 연예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자살사망률이 1위로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해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수는 총 13,407명으로, 하루 약 36.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간당 1.5명꼴로 자살하는 셈이다. 이제 자살은 우리 가정과 사회뿐 아니라 나라까지 약화시키는 암적인 존재이다. 자살충동은 신앙심의 강함이나 약함의 여부를 떠나 절망과 고통의 시기를 겪으면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자살에 관한 연구에서, 왜 상당히 풍족하게 사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자살 비율이 어느 때보다 가파르게 올라가는지를 조사했다. 그가 찾은 대답은 아노미 현상 때문이었다. 즉 다른 이들에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 어떤 관계망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 때문이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모되어도 좋은 생산자 또는 없어도 좋은 소비자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님을 느낄 때의 고독감 때문이다. 자살하려는 자들에겐 이런 이유가 숨어 있다. 이런 경제논리에 의해 주위에서 더 이상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 될 때,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있겠는가?

우리는 누구나 사회적인 존재로 창조되었고 인간관계로부터 결코 자유롭거나 홀로 서 있을 수 없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궁극적인 외로움과 버림 받음이며 홀로 남게 되는 시간인 죽음을 매우 두려워하며 회피한다. 우리는 절망되고 낙오될 때에 이런 죽음의 고통을 미리 맛보게 된다. 그래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내 가족, 내 친구들, 그리고 주위 사람들 모두가 나를 잊어버렸고 나를 버렸다. 나는 이제 홀로 남았다.”는 죽음의 맛만으로 쉽게 판단하고는 죽음을 선택한다. 이것은 무모하게 죽음에 대해 홀로 선제공격을 시도하는 일이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연합전선을 펴지 않고 어리석게 혼자 자신의 손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성보다 개인적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강하게 요구하는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쉽게 홀로 남아 죽는 방법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적인 자아 충족감(self-sufficiency)을 채워주는 죽음을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어리석게도 우리가 자신을 죽이기로 선택한 죽음을 존엄하다고 부른다. 이 얼마나 이상한 개인적 자유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리고 무엇인가에 의존하는 것을 큰 위기로 느끼며 두려워한다.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돌봄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그들에게 손을 벌려야 할 대상이 됨으로 치사하게 비참하게 속 보이는 것이 죽음을 택하는 것보다 더 두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누구라도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게 될 시간이 온다는 것이며, 그 때가 오면 누군가에 의해 돌봄을 받게 되는 것이 결코 부끄러움이나 치사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어느 누군들 자신이 연약해지고 불쌍하게 느껴질 때 자신의 운명을 쉽게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싶지는 않겠지만 누구나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나 자존감을 털어버리고 타인의 도움을 받는 길로 가야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회나 가정 속에서 자신을 파괴하도록, 자살하도록 충동을 받을 때, 왜 그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경제논리와 개인적 프라이버시 중심의 사회에 대해 가만히 있는가? 우리는 폭력적이며 죽음을 거래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우리 사회의 살인적인 경향들을 극복할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최소한 자존감이 남아있고, 최소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그런 어두운 밤을 맞이한다면, 바로 그 때가 다른 이들의 사랑과 관심이 가장 필요한 때임을 알아야 한다.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에는 주위에서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이들을 많이 찾아 그들의 경험, 이야기를 듣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 주위에서 고통과 어려움을 잘 견디어내는 사람들로부터 너무 많은 귀중한 것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쾌락, 즐거움, 또는 위안보다 용기와 인내를 위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한 고난을 견디는 사람을 쉽게 보거나 불필요한 사람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정말 그런 사람들은 우리에게 예언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홀로 남기 위해 그리고 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섣불리 죽음을 향해 선제공격을 하는 것은 무모한 짓임을 미리 알려주는 예언자.

 

/ 대구일보 2008. 11. 7. 허도화(계명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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