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학) 자료 나의 주기도문 이해와 설교론(3) / 허도화 교수
- 이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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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만을 원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만일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면 어린 시절부터 식사시간이나 잠자기 전에 기도하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부모들이 기도할 단어들을 가르쳐주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도의 단어들이 우리의 단어가 된다. 교회 역시 우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친다. 교회학교와 예배에서 우리는 주기도문을 배운다.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바로 그 기도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과 기도에서 사용해야 할 단어들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수세기가 지나는 동안 주기도문의 단어들은 기독교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관한 하나의 패러다임을 제공했다.
교회는 때로 예배에서 주기도문을 단순히 암송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주기도문을 주제에 따라 부분적으로 축소하거나 확대하여 사용한다. 경배와 감사의 기도를 할 때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부분을 확대한다. 고백의 기도를 할 때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부분을 확대한다. 또한 우리는 주기도문을 예배에서 설교에 대한 응답으로 적절한 회중기도로 확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세계의 지도자들이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리도록. 질병, 가난, 외로움, 또는 슬픔으로 고통 받는 자들이 치유되고 위로를 받도록. 압제받거나 괴롭힘을 받는 자들이 강해지고 구출되도록.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자들과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이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기억이 되고 모든 성도들과 새로운 친교의 자원이 되도록."1 이처럼 주기도문을 단순한 교육적 암송과 교리적 설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던 차원을 벗어나 예배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사용할 때 생산적이며 창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2
한 대학병원에서 사욕하고 있는 원목이 젊은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중환자실에 있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방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목에 절개수술을 받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펜을 집어 들고 판에다 글자를 쓰려 하였다. 판 위에 겨우 쓴 글자들은 빠졌거나 왼쪽으로 쓰였거나 중복되었다. 이런 그의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은 어려웠다. 조금 지난 후 그 할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그는 원목에게 주님의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원목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 할아버지는 다시 판을 집어 들고 기도를 다시 한 번 해줄수 있는 지를 물었다. 이번에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여..." 로 주님의 기도가 정말 그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 되기를 바라면서 원목은 그 요구에 응했다. 크고 분명하게,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 할아버지를 위한 기도문으로 개인화하면서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르면서 주기도문을 시작한 원목은 그 다음 단어들을 잊어 버렸다. 신학교가 그에게 결코 가르쳐주지 않은 순간이었다. 과거에 너무 많이 주님의 기도를 했기에 익숙하고 간단한 단어들을 잊어 버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원묙은 주기도문의 단어들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이전에 알고 있던 모든 단어들을 잊어 버렸다. 그가 기도하려던 일용할 양식과 시험이라는 단어들이 매우 실제적인 것들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 시절 교회학교에서 주기도문 쪽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열심히 암송한 후 사람들 앞에서 기도를 시작할 때 어떤 단어도 생각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 순간 원목은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은 채 의자에 앉으면서 기도하는 자로서의 대단한 책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교회가 과거에 주기도문을 어린아이들이 암기하도록 교육용으로 사용한 것처럼 할아버지를 실족시킬 것인가? 주기도문은 제자들이 때로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예수님에게 고백할 때 그가 직접 가르쳐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기도문조차 기억할 수 없다면,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원목이 환자에게 주기도문을 읽어주면서 기도의 위기를 맞이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 대답이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준 말씀 속에 있다. 마태복음 6:7 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많은 말을 해야 응답될 것을 생각하는 이방인들처럼 빈 구절들을 쌓지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교회학교에서 기도를 배울 때 기도가 단어들과 구절들을 쌓아올리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자랐다. 아무리 경건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주기도문을 암송할지라도 그 기도는 빈 구절들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간단한 주기도문을 통해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가르쳐주신다. 무엇보다 먼저, 주기도문의 첫 부분 감사 은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가장 중요함을 잊어버릴 때 그 기도가 빈 것이 된다고 말한다. 헨리 나우웬은 우리의 기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기도할 때 내 자신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나에게 사랑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한다." 3 이어 그는 그 관계가 어떻게 더욱 깊어지는지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나의 자매와 형제들 모두가 서로 하나가 되는 장소라는 것을 깨닫는다. 참으로 영적생활의 대단한 역설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우주적인 것이며, 가장 친밀한 것이 가장 공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4 여기에서 우리는 기도의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수직선을 초월하여 형제와 자매들까지 품는 수평적 가슴에까지 확대되는 관계가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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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註)
1. William H. Willimon, With Glad and Generous Hearts: A Personal Look at Sunday Worship (Nashille, TE: The upper Room, 1986), 120~121
2. Kendra G. Hotz & Mathews, Shaping the Christian Life: Worship and the Religious Affections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2006), 100.
3. Henri J. M. Nouwen, Here and Now: Living in the Spirit (New York: Crossroad, 1994), 23.
4. 앞의 책, 24.
허도화 / 계명대학교 예배설교학 교수.
출처 : 그말씀 (2009년 4월호) / 나의 주기도문 이해와 주기도문 설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