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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에세이 두려운 Back to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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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이던 두 아들을 미국 학교에 처음으로 등교시키던 1989년의 9월 첫째 월요일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뒤늦게 유학을 결심한 늦깍이 아빠 때문에 아이들은 즐겁게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다니던 한국에서의 학교생활을 접어야 했다. 자신들을 아들같이 아껴주고 사랑으로 가르쳐주던 담임선생님들과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친구들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학교로 공부를 하러 가야할 우리 아이들은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기본적인 영어 단어들을 읽고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 알파벳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더구나 한국어를 아는 아이들이 전혀 없는 미국 오리건 주의 한 시골 학교로 아이들을 전학시킨 것은 마치 아프리카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사막에 순한 한국산 강아지 두 마리를 던져 넣은 것 같았다.

아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미국의 초등학교로 등교하던 날,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아빠라는 죄책감에 시달려 아이들만 학교에 두고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혹시 첫 날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의 문화충격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한 아이들을 수업 도중에 데리고 가라는 학교로부터의 비상 전화 연락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고통스런 첫날, 기도하며 결과를 기다리던 아내와 나는 기적을 경험하였다. 우려하던 학교로부터의 비상 전화는 고사하고, 수업을 끝낸 우리 아이들은 일곱 명의 미국 친구들에 둘러싸여 주인공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 날 우리는 아이들 때문에 자그마한 집에서 미국생활 처음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들의 미국 친구들을 대접하게 되었다.

이 기적은 미국 선생님들을 통하여 일어난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이방인인 자신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도 거절이나 귀찮고 무시하는 눈빛이나 표정, 언어, 그리도 제스처를 발견할 수 없었다. 낯선 외국 학교에서의 첫 날,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언어소통이나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친구들까지 사귈 수 있는 기적을 선물한 선생님들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 학교는 어떤가? 젊은이들이 군대 가기를 꺼려하는 것처럼 개학 때가 되었는데도 아이들이 학교 가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들이 학교로부터 있는 그대로 초대받지 못하고 거절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이 학교로부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초대는 항상 있는 그대로 오라고 외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실, 인정하지 않는 것이 받아들이는 한 형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옷이나 장신구, 또는 조건을 채워야 하는 초대는 진정한 초대라고 말할 수 없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가 자격이 있는지 아닌지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의 돈지갑이 얼마나 큰지에 의해, 그가 성취한 것들이 얼마나 인상적인지에 의해, 그리고 그의 도덕적 정직함의 정도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거절은 매우 심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거절당하는 고통은 여러 가지 형식과 느낌으로 나타난다. 거절당함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으며 또한 상상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거절당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자신이 믿고 존경했던 분에 의해 자신이 거절당했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심지어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거절할 수도 있다.

이 땅에 학교가 생긴 이래 학교에 가기를 가장 두려워했던 아이들은 아마도 인종차별을 겪은 흑인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Back to School은 가장 감당하기 힘든 고통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집단이나 개인에게 거절당하는 것이 가장 심한 타격이기 때문이다. 거절하는 것은 인간의 미소를 지워버릴 수 있다. 거절하는 것은 무릎에 족쇄를 채워 움직일 수 없게 한다. 그것은 어깨를 꺾을 수 있으며, 생각을 뺐을 수 있으며, 그리고 마음을 파괴시킬 수 있다. 이런 일들은 흑인 학생들이 아침에 백인들의 학교를 갈 때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흑인 부모들은 아침마다 학교를 가지 않으려는 자녀들과 한 바탕 씨름을 해야 했다.

옛날이나 지금, 아이들은 그 어떤 조건으로도 거절이나 차별을 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미묘한 형식들에 의해 거절당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이 부모의 신분이나 재산의 정도에 따라 판단을 받고 구별된다. 성적이나 외모 등에 의해 자신감을 잃거나 위축된다. 당장 변화시킬 수 없는 조건들에 의해 계속 거절을 당한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자신의 부모뿐 아니라 자신까지 거절하게 된다. 자신을 스스로 거절하는 경우에는 내면적으로 자신에 대해 포기하고, 자신의 처지와 육체를 증오하면서 자라고, 자살까지 생각하게 된다.

새 학기가 다가왔는데도 학교로 돌아가기를 꺼려하거나 포기하려는 아이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아이들을 둘러싼 가정과 사회의 환경이 어려울수록,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여 차이가 나는 것을 부족한 것으로가 아니라 독특한(unique) 것으로 보는 시각이 교육하는 자들에게 필요할 것이다.

 

/ 대구일보 2009.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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