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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에세이 어린이들을 축복하려는 열정

  • KALAHKA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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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어린 아이들 앞에서 설교를 하는 일이다. 가끔씩 어린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때 나는 설교자로서 대단한 긴장감을 느낀다. 피곤하거나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집중력을 잃기 때문이다. 내가 설교하고 있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소리를 내고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설교로 어린 아이들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는 것 같아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떠들고 부산한 아이들을 그냥 두면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줄 것 같아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은 가능한 피하고 싶다. 어린 아이들과 싸우고 신경전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런 천방지축 어린 아이들을 겁내지 않는 설교자, 오히려 아이들을 대환영하는 설교자가 있다. 예수는 어린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게 하라고 말한다. 어린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어린이들에게 다가가며 그들을 축복하려는 열정이 넘친다. 이런 그의 열정은 어린 아이들을 자신의 팔로 끌어안고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오늘날 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받아야 할 최고의 선물은 축복이다. 현대 젊은 부모들이 회복해야 할 것은 과거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가슴에 품었던 의미 있는 접촉이다. 어루만지는 행위는 따뜻함, 개인적으로 받아들임, 인정한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육체적으로 건강함까지를 전달하는데 핵심이 되는 축복의 한 형식이다. 나에게 찾아오셔서 가슴으로 꼭 껴안아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가슴이 오늘 우리의 어린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나의 축 처진 등을 두드리면서 격려하며 용기를 주시던 선생님의 따뜻한 손이 오늘 우리의 어린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특별히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라도 나의 노력을 칭찬하면서 크게 손뼉을 치던 코치의 목소리가 오늘 우리의 어린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어린이를 축복하는 것은 그들의 높은 가치를 선언하는 일이다. 아이들이 가족의 정식 구성원들로 평가되고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보화들을 투자할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며 표현하는 일이다. 우리 가정과 학교, 사회와 국가에 특별한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린이들이다. 그들의 미래를 그리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청사진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가? 위대한 19세기 복음전도자였던 무디가 한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지난밤에 얼마나 많은 개종자들을 얻었습니까?” 무디는 두 명 반이요.”라고 대답했다. “당신은 어른 두 명과 아이 한 명을 의미하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무디는 다시 대답했다. “아니요. 두 명의 어린아이들과 한 명의 어른이요. 어른은 이미 자신의 삶의 반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두 명의 아이들은 앞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들의 전 생애를 살아갈 것입니다.”라고.

앞으로 우리의 새로운 가정, 학교, 사회, 국가의 역사는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이야기들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기를 바란다. 비록 물려 줄 것들은 풍족하지 못할 지라도 우리의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일만은 멈추지 않기를 꿈꾼다. 오늘 우리가 어른이라는 것 자체가 어린이들을 축복할 수 있는 자격과 의무가 동시에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한쪽 팔로 안고는 다른 손을 머리에 얹어 축복해보라. 당신은 가장 확실한 미래에 투자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 대구일보 2010. 5. 4. (계명대학교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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