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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에세이 추석에 받은 최고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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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날 아침에 서울에서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던 나는 비보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교인 할머니 한 분이 98세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내용이었다. 그분은 병원에서 간호를 받으며 지낸 25개월 동안 식사를 잘 하셨기에 100세를 넘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자녀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2년 먼저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홀로 계시는 어머니와 만 하루도 함께 지내지 못하고 교인의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대구로 향했다. 왜 하필이면 추석날에 돌아가신단 말인가? 오랜 만에 모든 가족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쁨과 설렘이 풍성한 명절에 통곡해야 하다니....추석날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나의 장모님은 하늘로부터 하얀 눈이 뿌려지던 11, 설날에 돌아가셨다. 아내의 가족들은 새 해를 맞이하는 즐거움을 맛보지도 못하고 첫 날을 눈물로 지새웠다. 설날에 돌아가신 장모님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설날에 돌아가신 장모님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집안의 어른이 없으면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 점차 어렵게 된다. 그럼에도 처가 식구들은 지금까지 빠짐없이 새로운 해가 되면 모든 일들을 제쳐놓고 한 장소에 모인다. 설날에 돌아가신 장모님을 추도하기 위해서이다. 집안에 어른이 없어도 국내외에 흩어진 모든 자녀손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장모님이 명절인 설날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른이 돌아가신 날이 곧 가문의 전통을 세우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추석날에 그 할머니도 자녀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시고 세상을 평화롭게 떠나셨다. 할머니는 자신의 마지막 생애의 순간을 자녀손들이 함께 모여 가문의 전통을 세워갈 수 있는 명절이 되도록 만드셨다. 매년 내가 경험한 것처럼, 이제 할머니의 자손들도 명절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것이다. 그들은 추석날에 돌아가신 어머니 또는 할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이제 추석은 단순한 명절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간의 결속과 평화를 가속화 하는 가문의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일상에서는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 및 친척들이 한 공간에 모두 모여 활동을 한다거나 식사를 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이제부터 할머니의 자손들은 추석이 되면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식사 및 생활을 같이하며 가문의 전통을 세워갈 것이다. 아무리 민족의 대 명절이라 해도 점차 핵가족화 되어가고 있는 21세기는 명절이 가족들의 관계로부터 스트레스 증후군들을 만들기 쉽다. 어른들을 만나는 것조차 귀찮고 두렵게 여기는 젊은 사람들은 추석의 의미뿐 아니라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명절이 흩어져 사는 가족들을 결속시키는 기쁨과 평화의 날이 되지 못하면, 오히려 분주하고 복잡한 일상에 지쳐 무엇보다 푹 쉬고 싶은 도시의 가족들에게 염려와 걱정, 피로와 괴리를 더 쌓도록 하는 위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가족들을 만나는 명절에 최고의 선물은 가족 간에 삶의 은혜를 베풀며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서로 가족을 위해 은혜와 평화를 기원하는 것이다. 농부가 지나간 봄과 여름으로부터 가을의 곡식과 열매들을 추수하듯,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경험되는 평화를 추수하는 것이다. 부족한 물질과 지위와 형편에 매달려 마음들이 찢어지지 않고 서로에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그 결과가 평화로 나타나기를 기도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있기를 인사하고 축복하면 가족들 사이의 간격을 연결시키고 치유가 일어날 것이다.

가족 간에도 이기주의로 첨예화되어 가는 지금, 명절을 지키고 가족들을 위한 그 의미를 확대시키려면 무엇보다 먼저 오랜 만에 만나는 가족들에 대한 은혜의 인사와 평화의 축복을 나누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먼저 은혜를 생각하고 나누면 평화가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평화는 은혜가 역사한 후에 나타나는 마음의 조건,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이 평화로우면 상대방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따라오면서 가족의 치유가 일어난다.

나는 이 번 추석날에 장례식을 통해 한 가족에게 임한 최고의 선물을 보았다. 한 어머니 또는 할머니가 자녀손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항상 은혜와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 대구일보 2009.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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