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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에세이 좁은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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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학기를 준비하던 주간은 너무 빠르게 다가왔다. 토요일에도 회의와 모임으로 한 나절을 학교에서 보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할 시간이 빠듯했다. 토요일 이른 저녁, 설교 원고를 완성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너무 머리가 아파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먼저 잠을 잔 후, 새벽에 일어나 설교를 마무리하려 했다. 잠을 깨어보니 자정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컴퓨터의 속도가 너무 느려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빨리 원고를 완성하려고 마음은 급한데, 용량이 적은 컴퓨터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느리기만 하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컴퓨터의 다음 장면이 뜨기도 전에 오른 손은 마우스를 계속 클릭한다. 한 가지 명령을 소화시키기도 전에 또 다른 명령을 요구하니 컴퓨터가 소화불량에 걸려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바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른 새벽에 운동복을 입고 아파트 근처 운동장 10바퀴를 돌았다. 느려 터진 컴퓨터와 싸움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차라리 그 아까운 시간을 신선한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 속에서 말씀을 묵상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천천히 걸으면서 말씀을 묵상하려고 운동장으로 나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땀을 흘리고 숨을 가파르게 들이쉬면서 달리고 있었다. 운동장에 나가거나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면 땀을 흘리기 위해 빠르게 뛰는 습관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걷고 있는데, 나만 홀로 열심히 뛰고 있었다. 헐떡거리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직 뛰는 데만 집중하던 나는 말씀에 대한 어떤 묵상도 할 수 없었다. 생각이 바쁘고 마음이 분주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거의 모든 문화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라고, 그리고 그 속도를 유지하라고 요구한다. 예를 들어, 창문을 올리는 것도 자동장치가 달리고, 많은 다양한 질문들이 있음에도 기계가 정해진 몇 가지로 빠르고 간단하게 대답해준다. 디지털 문명을 즐기는 젊은이들은 인터넷과 이메일로 그들만의 단축형 언어들을 교환한다.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기계들은 잘 팔린다. 사실 이런 자동화는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우리가 이런 자동화의 노예가 되어 끊임없이 기계를 움직이고 쉬지 못한다. 심지어 다람쥐의 쳇바퀴 같은 스케줄이 멈출 때조차, 우리의 시간이 줄어드는 순간에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계속 헐떡거린다. 이런 모든 것은 우리를 계속적으로 표면적인 삶, 겉치레의 삶을 살도록 만들 수 있다. 천천히 또는 깊게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것을 피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끊임없는 소리와 움직임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본다. 운전 중, 걷는 중, 쇼핑하는 중에도 한 손은 계속 휴대전화기를 귀에 대고 다닌다. 젊은이들은 어디를 가나 MP3로 자신들만의 음악을 귀에 달고 다닌다. 현재 우리 사회는 침묵의 순간이나 침묵의 기간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곳은 바로 그런 침묵의 공간과 시간이다. 모든 빈 것을 채울 수 있는 분, 진실로 우리를 따뜻하게 만들고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랑을 주실 수 있는 분은 바로 그 거룩한 마음, 침묵 속에 거하신다.

비어 있다는 것은 우리 시대에 매우 일반적인 불평이다. 사람들은 기도를 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의식적으로 비우는 것까지 허무, 무의미, 불행한 것으로 말한다. 빈 공간과 침묵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빨리 벗기 위해 우리 속을 깊이 보지 못하도록 우리의 주위를 분산시키는 하찮은 것들로 급하게 채우려 한다. 또한 우리는 너무 짜여 진 것들로 열심히 채움으로 이런 개방적 공간을 파괴할 수 있다. 마치 행할 일들을 많이 적어 놓은 것이 성취감을 주는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너무 많은 하찮은 것들로 삶을 어지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이런 적극적인 비움과 침묵에로 돌아갈 수 있는가? 새들이 자신의 둥지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관찰해보라. 겨울 동안 새들의 둥지는 나뭇잎, 가지, 조약돌들로 가득 채워진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면 그 둥지는 새로운 거처가 되기 위해, 다시 한 번 따뜻하고 상쾌한 장소가 되기 위해 비워지고, 기꺼이 비워지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새들은 아무리 어렵게 만든 둥지일지라도 다시 또 다시 비우는 과정을 밟는다. 그 비우는 과정은 세상이 우리의 삶을 큰 것들로 가득 채워 진리의 음성을 들을 공간마저 제거하려는 유혹을 물리치는 훈련이다. 우리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기 위해 그리고 진실한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좁은 침묵골방, 좁은 묵상공간을 선택하자.

 

/  대구일보 2009. 9. 18. - 허도(계명대학교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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