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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에세이 우리에겐 완전 정지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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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휴가철이면 문화가 다른 지역이나 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많아지고, 이 때 문화충격(culture shock)을 경험한다. 문화충격이란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문화 환경이나 사회 환경에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의 불안을 말한다. 새로운 문화를 소화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표현한 단어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우리가 외국에서 받은 문화충격 중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이 자동차문화, 교통문화가 주는 충격이다.

선진국 자동차문화를 유지시켜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고발정신이다. 미국인들의 고발문화에 의해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주차장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 주차 선을 물고 삐딱하게 주차된 자동차가 있으면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의 자동차일지라도 경찰서에 바로 신고한다. 한 사람의 바르지 못한 주차습관이 주차하려는 다른 사람들에게 바로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미국 뉴저지 중부에 위치한 드류대학교를 다닐 때였다. 그 학교는 나무숲 사이로 캠퍼스를 둘러싸고 좁은 도로가 나있고 그래서 인도와 마주치는 지점마다 우선멈춤 표지판을 많이 세웠다. 하루는 나도 모르는 일인데 내가 캠퍼스 도로에서 자동차를 몰다가 정지선을 지키지 않았다고 벌금고지서를 받았다. 그것도 교통경찰이 아니라 학교 내 순찰업무를 위탁받은 용역업체인 캠퍼스 순찰대가 발송한 것이었다. 그들은 사무실에 접수된 한 백인 학생의 고발 내용을 근거로 나에게 벌금을 부과한 것이다. 나는 사무실로 찾아가 현장에서 내가 우선 정지선을 어긴 것을 보았냐고, 증거 사진이라도 있느냐고 강하게 따졌지만, 그들은 시간, 장소, 그리고 자동차의 번호와 모양을 기록한 쪽지와 함께 나를 고발한 미국인 학생의 말을 철저하게 신뢰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학교은행 계좌로부터 벌금 25달러를 빼내갔다. 억울하지만 이런 벌금을 물지 않으면 나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졸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겪어야 할 자동차 문화충격이라고 나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정말 억울하다고 생각한 것은 벌금 때문이 아니었다. 어떻게 외국인 학생인 내가 말하는 이야기는 그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지만, 단순히 캠퍼스를 지나가다가 자동차 한 대가 정지선을 지키지 않았다고 그 자동차의 번호를 적어 신고한 미국 학생의 말은 그들에게 그렇게 대단한 신뢰를 주는지....한 달에 한 번씩 교내 모의법정이 열릴 때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었지만, 결국은 내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지 백인 학생이 직접 보았다며 메모해 준 고발장 외에는 어떤 증거자료가 없음에도, 내가 패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보다 그들이 이미 들어 알고 있던 한국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중요한 증거자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의 눈에 비친 우리 한국 사람들의 교통법규의식이 너무나 낮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벌금을 물게 되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또 다른 한 가지 억울한 것은, 내가 분명히 캠퍼스 도로의 정지선에서 자동차를 일단 멈춘 후 다시 출발했는데도, 그들은 그것을 정지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에게 일단 멈춤이란 완전히 정지한 상태로 최소한 3초 정도는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일단 정지선에 다다르면 자동차 브레이크를 살짝 밟다가 지나가는 것을 그들은 완전히 정지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3초 이상 완전히 정지한 후 출발하라는 규정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약간 비웃으면서 도대체 누가 바보같이 그렇게 완전히 정지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어릴 때부터 철저한 법규교육과 훈련을 반복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타인을 배려하는 윤리의식교육과 바른 운전훈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3초간의 완전 정지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생활습관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빨리빨리로 습관화된 우리에게 3초 동안 완전히 정지한 후 다시 출발하는 것은 정말 답답하고 어리석은 짓으로 보인다. 곳곳에 장애물들이 설치된 지뢰밭처럼 우선멈춤 지역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얼마나 우리의 빨리빨리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데! 우리는 교차로에서 단지 속도만 줄이다가 파란신호등이 켜지기도 전에 냅다 달린다. 우리에겐 완전 정지란 없다. 기회만 있으면 1센티미터라도 전진하면서 더 빨리 나가려 한다. 오죽 하면, 우리는 빨간 신호등과 파란 신호등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노란신호등까지 빨리 지나가라는 신호로 해석을 하겠는가! 일반 도로에서도 그런데, 감시하는 사람 없는 캠퍼스의 도로에서, 그것도 경찰서가 아니라 용역업체가 그어놓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지선을 얼마나 성실하게 지키겠는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가장 지켜지지 않는 것이 정지신호라는 것을. 그리고 정직하게 정지한 후 다시 출발하는 자동차문화가 무너진 나라는 분명히 후진국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에서는 정지선만 지켜도 양심 있는 1등 시민이다. 우리의 양심을 살리는 일은 정지선 하나만이라도 철저하게 지키는데서 시작된다.

 

/ 대구일보 2009.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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