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에세이 대학의 정신이 살아있는가

 한 기독교 대학의 학생 채플에 특별 강사가 초청되었다. 대학생 채플에 대해 큰 기대를 갖지 않았던 그 강사는 평범한 설교를 준비하였다. 채플이 시작될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의 대화 소리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젊은 교수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학생들을 향해 돌아섰다. 자신의 오른 손 직지 손가락으로 2층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거기 2층, 두 명의 남학생, 너희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그 교수의 손가락은 모든 학생들의 시선을 한 곳으로 집중시켰다. 2층에서 학생들이 신문을 펼쳐놓고 떠들고 있었다. “너희들, 우리 대학의 정신이 있는 거야? 귀한 강사 목사님을 모셔놓고 뭐하는 짓이야! 너희 같은 학생들 때문에 우리 대학이 욕을 먹는단 말이야! 자네들이 우리 대학인이야? 창피한 줄 알아!” 그 교수의 외침은 어수선하던 분위기를 한순간에 접수했다. 그리고 채플은 너무나 조용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이런 분위기를 처음 경험하는 강사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 채플은 문제없이 끝났다. 그런데 채플에서 나와 교목실을 향해 가던 강사 목사는 또 한 번 놀랐다. 건장한 남학생 두 명이 그의 길을 막아섰다. 학생들은 강사 앞에서 자신들의 고개를 숙였다. “목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럴 것입니다. 용서해주세요.” 그 강사는 당황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학생들이 너무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 대학의 정신이 무엇이기에 젊은이들이 신문을 펼쳐 놓고 떠든 것 때문에 모든 동료 학생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도 채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외부 강사에게까지 찾아와 용서를 구한단 말인가! 도대체 이 대학의 정신이 무엇이기에....

해병대의 정신이 도전이나 극기, 용맹 또는 7전8기 등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대학마다 독특한 정신이 있다. 대학의 정신은 설립자들이 세우려는 대학의 존재 근거와 이유, 그리고 사명 등을 밝힌 창학정신에 근거한다. 예를 들어,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과 교회지도자들에 의해 기독교 대학으로 설립된 계명대학교의 정체성의 핵심은 기독교적 설립정신을 기초로 마땅히 성취해야 할 교육이념 속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나라를 지향하는 선교적 전통에 기초하여 수립된 기독교 대학의 교육이념은 그 대학의 존재이유와 교육목적뿐 아니라, 미래적 비전까지를 제시하는 대학의 생명과 같다. 이처럼 기독교 대학에서 상위가치로 작용하는 설립정신이 퇴색된다면, 대학의 목표와 조직, 그리고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뿐 아니라,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려는 대학 구성원들의 공동체성을 흔들고, 심지어 대학 발전을 위한 전략을 수립할 때 대학의 정신과 가치관을 제공하는 정체성(identity)으로부터 나온 교육의 목표와 방향까지 상실할 수 있다.

대학의 정신은 아무리 훌륭한 설립자들과 분명한 확신으로부터 나왔을지라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퇴색될 수 있다. 기독교 대학을 설립한 세대가 지나가고 기독교적 교육이념에 대한 비전과 소명을 지닌 교직원들도 점차 줄어들 뿐 아니라, 법인과 대학본부가 구성원들에게 뚜렷한 기독교적 창학정신과 교육이념을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맞게 새로운 해석과 체계적인 재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면 대학의 정체성이 약화되는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이런 시대적인 현상과 도전에 대해 오늘의 대학인들은 먼저, 서로에게 얼마나 본래 대학 설립자들에게 정직하고 그들의 건학이념에 충실한지 질문해야 한다. 그 다음, 정체성을 재확립하기 위해 지성적, 사회적, 선교적 영향력을 지녔던 초기 선배들의 학문적 수월성, 윤리적 탁월성, 그리고 기독교 문화적 차별성을 회복하고 확대해야 한다.

대학의 정신은 철저한 훈련을 통해 갱신되어야 한다. 구성원들로부터 대학의 창학정신과 교육이념에 동의하고 정체성 유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동의를 받을 뿐 아니라, 학교발전을 위한 연구 및 공헌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직원들에게 주기적으로 대학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고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위한 노력을 격려하고 지원하기 위해 정체성연구센터를 설립 운영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 신앙적 동기와 열정이 담긴 교육과 연구 그리고 봉사 정신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센터 안에 창학정신과 관련된 역사적인 자료들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전시관을 마련하여 대학의 역사를 관람하는 코스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별히 대학의 정신은 매년 신입생 유치 과정에서 그리고 그 대학을 선택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 대학의 특별한 정신과 역사를 근거로 형성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도록 돕는 것은 구성원을 진정으로 환영하는 일이다. 하지만, 오늘날 첫 학기부터 신입생들과 신입교직원들에게 다른 대학들이 모방할 수 없는 그 대학만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고 기억하고 적용하게 할 뿐 아니라,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특색 있는 미래의 방향과 비전을 설정하도록 돕는 대학들이 얼마나 있는가?

/ 대구일보 2009.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