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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에세이 사랑하는 아들아, 이제는 사위가 되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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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결혼을 준비하고 있던 신랑과 신부로부터 결혼식의 주례를 부탁받았다. 그러나 점잖게 사양했다. 아무리 주례 전공이라 해도 자기 자식의 결혼식 주례까지 도맡는 것은 다른 주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아들은 주례사 대신 격려사(Words of Encouragement)를 전하겠다는 나의 제안을 어렵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아들의 결혼식에서 전할 격려사를 준비하던 나는 결혼식 격려사가 주례사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후회했다. 주례사와 격려사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없는 것 같았다. 더구나 주례사 후에 곧바로 전하는 격려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틀 밤을 고민하면서 격려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격려사가 즐겁고 행복하게 진행되던 결혼식 분위기에 찬물을 뿌렸다. 아들을 울리고 만 것이다. 나의 격려사를 들은 후, 부모에게 답례의 말을 전하려던 아들의 울음소리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아니 안타깝게 만들었다. 아들은 울음을 멈추기 어려웠던지 자신이 준비한 답례의 말을 한마디도 전하지 못하고 돌아서 버렸다.

어떤 답례의 말을 듣지 못했어도 좋았다. 나도 아내도 울고 말았으니까. 나는 아들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같이 소리를 내며 울던 아들의 그 긴 흐느낌 속에서 나는 지난 28년 동안 아들로부터 듣고 싶었던 말들을 다 들었다. 아들이 결혼을 하는 자리에서 부모에게 답례로 할 무슨 말이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잘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말 외에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그리고 그 말을 진솔한 감정을 담은 감사의 울음소리로 듣고 보았으니 이보다 더 듣고 싶은 말이 어디 있겠는가?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결혼식에서 결혼생활 선배로서 격려사를 전하게 되니 참 영광이다. 너와 네 동생은 나의 결혼식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값진 열매들이었고 지난 29년 동안의 나의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 정말로 훌륭한 아들들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원 유학생 생활을 시작하던 때, 9살이던 너 또한 초등학교 유학생 생활을 시작하였지. 다들 좋은 기회라고 말했지만, 우리에겐 미국 생활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 낯설고 소통 안 되는 우리 가족의 미국 정착 생활 속에서 우린 서로 의지하고 돌보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염려를 조용히 감당하며 변화를 경험했지. 우린 서로에게 아버지도 아들도 아니었어. 미국 생활에 빨리 적응해야 하던 우리에겐 그럴 필요와 여유가 없었어. 우린 나이만 차이가 날 뿐 그냥 유학생 생활을 같이 시작한 친구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너의 결혼식이 우리의 지난 어려운 미국 정착 생활을 더 없이 귀하고 행복한 시간들로 다시 느끼게 하는구나. 너의 행복한 결혼식 때문일까?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두운 그림자들은 사라지고 밝은 날들로만 기억되네. 아들아, 이젠 그런 즐거운 기억들을 가지고 너의 인생 여행을 축복하고 너의 앞길에 친절과 애정의 꽃들이 풍성하게 깔리기를 위해 기도하련다. 우리의 지난 유학생 생활에서 미리 맛보았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 너의 결혼이 주는 행복한 시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너의 축복된 미래를 미리 볼 수 있어서 감사기도를 하련다.

아들아, 내가 이 세상 누구보다 너의 행복한 미래를 가장 축복하고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이미 네가 다 알고 있는 것이야. 그런데도 이런 느낌을 다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유는 내가 너의 아버지이기 때문일 거야. 그러나 여기쯤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추가하고 싶구나. 어떤 부모도 사랑 넘치고 친절하고 친구 같은 너의 엄마보다 더 진실한 애정을 가지고 너를 축복할 수는 없을 것이야. 엄마는 항상 최고의 애정을 가지고 너와 나를 하나 되게 하려고 노력했어. 그런 사랑과 애정은 너의 아내에게도 동일하게 베풀어질 거야. 이제 한 가족이니까. 너의 결혼이 우리 가정의 행복과 은혜가 되는 것이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란다.

그런데 아들아, 이제는 마지막으로 너의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자랑스러움으로 너의 신분 변화를 축하하고 싶구나. 결혼식은 네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정체성으로부터 새롭게 얻게 되는 정체성으로의 신분 변화를 의미 있고 자연스럽게 이행되도록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알지? 아들과 며느리야, 이제는 나의 사위와 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두 가정을 대표해 결혼함으로 너희의 신분에 큰 변화가 왔으니, 새로운 가족 관계를 세워가자. 아들아, 이제 나와 엄마에게는 점잖은 사위로, 아들 없던 장인과 장모에겐 듬직한 아들이 되어다오. 며느리야, 이제 딸 없던 나와 시어머니에게는 재롱떠는 딸로,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점잖은 며느리가 되어다오. 너희들의 결혼으로 인하여 모든 식구가 새로워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란다. 나도 이젠 가장이 된 아들 너에게 사위처럼 정중하게 대하도록 노력하마. 그리고 나의 새 딸이 된 며느리 너에게 너의 아버지처럼 애정 있게 대하도록 노력하마.”
 

대구일보 2008. 11. 24일자 - 허도화 (계명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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