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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에세이 당신의 옷들을 벗기 위해 거울 앞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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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2월은 대학 졸업 절기이다. 최근 대학 졸업식은 누구나 기뻐할 행사는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이나 졸업생들을 배출하는 대학이나 자녀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부모들이나 모두 걱정이다. 그들 앞에 대학보다 더 넓고 더 삭막하고 더 경쟁이 치열한 직업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졸업식 분위기는 이미 취업 전선에 뛰어든 졸업생 당사자들 태반이 참석하지 않아 썰렁하기만 하다. 일자리는 줄어드는데도 대학들은 졸업생들의 졸업장을 마구 찍어내고 있다. 그런데도 대학마다 젊은이들에게 학위 모자와 가운을 입히고 대단한 졸업축하식을 베풀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졸업생들은 이제 이 캠퍼스를 떠나 로켓처럼 날라 이 나라에서 가장 좋은 대학원이나 전문 직장을 향해, 공적이거나 사적인 분야의 직업을 향해, 해외에서 수년간의 봉사와 유학을 향해 떠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떠가기 전에, 대학은 한 가지 특별한 일을 하려 한다. 그들 앞에 놓인 새로운 날들을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을 챙겨주려 한다. 그것이 바로 학교가 졸업생들에게 지식 성취의 상징인 학사모와 가운을 입혀주려는 이유이다.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하는 대학과 교육은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졸업생 여러분은 대학의 교육 성취의 상징이다.

대학원 학위수여식이 있던 지난 목요일, 나는 졸업하는 학생들이 학위 가운과 모자를 입고 졸업식장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멋있게 보였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 학위가운과 모자가 참 멋있네. 정말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독창적인 모습으로 보여!”라고 소리쳤다. 그 때 한 학생이 나의 말에 응수했다. “교수님, 이 학위 가운이 얼마인지 아세요? 1억 정도 밖에 들지 않았어요.” 수년 동안 학업을 성취하느라 쏟아 부어 넣은 학비, 연구 및 도서비, 차비, 식사비 등 계산해 보니 정말 그 말이 맞았다. 학위를 받는 학생들이 입은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가운과 모자는 여러분이 앞으로 새로운 세계에서 입을 가장 값진 복장이다. 앞으로 이처럼 값진 의복은 입어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대학이 단순히 수년 동안의 학업 과정을 거쳐 그 목표를 성취한 졸업생들의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졸업식에서 학위 모자와 가운을 입히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학위 모자와 가운을 입고 캠퍼스를 활보하던 학생이 말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옷을 한 번만 입어보고 깊은 곳에 보관하기에는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졸업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분야에 관한 지식은 성취하였을지 몰라도, 아직 미완성의 졸업생들에게 남아 있는 많은 부족한 것들을 덮어주기 위함이다. 학위 모자와 가운은 특권이나 성취의 옷이기보다는 더 많은 책임의 옷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대학은 졸업생들이 4년 동안 전문 지식과 기술을 성취했다고 말할 수 없다. 졸업생들이 대학 교육으로부터 아직 덧입지 못한 것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4년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그 모든 아쉬운 것들과 부족한 것들까지도 한꺼번에 덮어주기 위해 대학은 미완성의 졸업생들에게 검은 가운을 입힌다. 드러내기 위함보다 덮기 위함이다.

연합군이 세계 제2차 대전을 겪는 동안, 전쟁에 관해 매우 긴급히 의논과 결정을 해야 할 문제들이 생길 때,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가끔 미합중국 국회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만났다. 처칠은 평소 거울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자신의 연설을 연습하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한날 저녁, 루즈벨트가 백악관 게스트 룸 모퉁이를 돌고 있을 때였다. 거울에 비쳐진 처칠은 완전히 벌거벗은 채로 자신의 연설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루즈벨트는 조용히 들어가 숨을 죽이고 말했다. “처칠 수상 각하, 죄송합니다. 제가 방해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처칠은 까치발을 하고는 돌아서서 루즈벨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을 흔들고 전혀 예상치 않게 대답을 하였다. “영국 수상은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하나도 감출 것이 없습니다.” 아마 처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날의 일정이나 국회에서의 연설에서 자신이 외부에 걸치게 될 모든 의전상의 옷들은 올가미일 뿐, 자신의 진실한 정체성과는 전혀 비교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학위 모자와 가운을 입을 자격이 있을 만큼 이미 대학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세상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학위 모자나 가운이 아니다. 이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마음 깊은 욕망들이 무엇인지를 날마다 확인하기 위해 거울 앞에 서야한다. 처칠이 한 것처럼, 학사모와 가운뿐 아니라 자신에게 걸쳐진 모든 옷들을 벗어야 한다. 그리고 대학교육의 대가로 어떤 삶을 얻을 것인지를 구하는 것보다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될 것인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종류의 옷을 입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 대구일보 2008. 2. 22 허도화 (계명대학교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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